탄소배출권이란 무엇인가? 세계 경제의 새로운 무역장벽이 될까

탄소배출권 거래제와 세계 경제의 변화 탄소배출권 거래제와 탄소국경조정제도를 상징하는 지구, 산업시설, 국제무역 및 주요국 국기 이미지

환경 규제에서 산업 경쟁력의 문제로, 탄소배출권이 바꾸는 세계 경제

기후변화와 지구온난화는 오랫동안 국제사회가 해결해야 할 중요한 과제로 거론되어 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한 각국의 정책은 단순한 환경보호 차원을 넘어 기업의 생산비용과 수출 경쟁력, 나아가 국가 간 무역질서에도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그 중심에 있는 것이 바로 탄소배출권(Carbon Emission Allowance)이다.

한때 새로운 투자시장으로 주목받았던 탄소배출권은 최근 국가별 정책 변화와 시장 여건에 따라 서로 다른 흐름을 보이고 있다. 특히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기후정책 변화는 국제적인 탄소중립 추진에 불확실성을 더하고 있지만, 유럽과 아시아 주요국들은 오히려 관련 제도를 확대하거나 구체화하고 있다.

그렇다면 탄소배출권은 어떤 제도이며, 앞으로 세계 경제와 우리 기업에 어떠한 변화를 가져오게 될까.

탄소배출권이란 무엇인가? 기업의 탄소배출에도 가격이 매겨진다

탄소배출권은 정부가 기업 등에 일정량의 온실가스를 배출할 수 있도록 할당한 권리를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배출권 1개는 이산화탄소 환산량 1톤(tCO₂eq)에 해당한다. 여기서 이산화탄소 환산량이란 이산화탄소뿐 아니라 메탄 등 여러 온실가스의 온난화 영향을 이산화탄소 기준으로 환산한 단위다.

이를 제도적으로 운영하는 방식이 배출권거래제(ETS, Emissions Trading System)다.

배출권거래제는 정부가 온실가스 배출허용총량을 설정하고 기업별로 배출권을 할당한 뒤, 실제 배출량에 따라 기업들이 부족하거나 남는 배출권을 거래하도록 하는 제도다. 이를 총량제한 배출권거래 방식(Cap and Trade)이라고 부른다.

예를 들어 한 기업이 1년에 10만 톤의 온실가스를 배출할 수 있는 배출권을 할당받았는데 실제 배출량이 12만 톤이라면, 원칙적으로 부족한 2만 톤에 해당하는 배출권을 추가로 확보해야 한다. 반대로 생산공정 개선을 통해 배출량을 8만 톤으로 줄였다면 남는 배출권을 판매하거나 관련 규정에 따라 활용할 수 있다.

이 제도의 핵심은 탄소배출에 경제적 비용을 부여한다는 점이다. 기업으로서는 배출권을 구매하는 비용과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한 설비투자 비용을 비교하게 되고, 장기적으로는 탄소배출이 적은 생산방식을 선택하도록 유도받게 된다.

다만 탄소배출권과 탄소크레딧(Carbon Credit)은 구분할 필요가 있다. 배출권은 정해진 배출허용총량 안에서 할당·거래되는 권리인 반면, 탄소크레딧은 별도의 감축사업이나 탄소흡수사업을 통해 발생한 실적을 검증·인증한 것이다. 두 제도는 서로 연계될 수 있지만 동일한 개념은 아니다.

유럽은 왜 탄소배출권을 새로운 무역질서로 연결하고 있을까

유럽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와 관련된 철강 생산시설 및 수출항만 전경
유럽연합(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는
철강 등 탄소집약 제품의 생산과 수출
경쟁력에 새로운 영향을 미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탄소배출권 제도를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해 온 지역 가운데 하나다. 2005년 EU 배출권거래제(EU ETS)를 도입한 이후 기업의 온실가스 감축을 유도해 왔으며, 최근에는 이러한 규제를 수입상품에도 연결하고 있다.

대표적인 제도가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Carbon Border Adjustment Mechanism)다.

CBAM은 EU로 수입되는 특정 제품의 생산과정에서 발생한 탄소배출량을 산정하고, 이에 상응하는 탄소비용을 부과하는 제도다. EU 기업들이 탄소배출 규제로 비용을 부담하는 상황에서, 규제가 느슨한 국가의 제품이 상대적으로 유리해지는 문제를 줄이려는 목적이 있다.

이를 탄소누출(Carbon Leakage) 방지라고 한다. 탄소누출은 엄격한 탄소규제를 피하기 위해 기업이 생산시설을 규제가 약한 국가로 이전하거나, 탄소배출이 많은 수입제품이 역내 생산제품을 대체하는 현상을 뜻한다.

EU는 2023년부터 전환기간을 운영한 뒤 2026년 1월 CBAM의 본격 적용을 시작했다. 현재 핵심 대상은 철강, 알루미늄, 시멘트, 비료, 전력, 수소 등 6개 품목군이다. 다만 실제 적용 여부는 세부 품목분류에 따라 결정되므로 해당 산업의 모든 제품이 일률적으로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CBAM에 따른 비용 부담은 EU 수입업자에게 직접 발생하지만, 수출기업도 제품의 탄소배출량을 산정하고 검증에 필요한 자료를 제공해야 한다. EU가 요구하는 탄소배출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다면 가격 협상이나 거래조건에서 불리해질 가능성도 있다.

또한 2026년 수입분에 대한 CBAM 인증서의 실제 판매는 2027년부터 시작되며, 첫 연간 신고와 인증서 제출 역시 2027년에 이루어진다. 따라서 제도의 본격 적용 시점과 비용 정산 일정을 구분해 이해해야 한다.

결국 탄소배출은 생산공장 내부의 환경관리 문제에 머무르지 않고, 국제시장에서 제품의 가격과 경쟁력을 결정하는 요소로 확대되고 있는 셈이다.

미국은 속도를 늦추고, 중국과 일본은 제도를 확대하고 있다

탄소중립을 둘러싼 국제사회의 움직임이 모두 같은 방향으로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미국은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연방정부 차원의 기후변화 대응정책을 크게 전환했다. 특히 2026년 1월 27일 파리기후협정 탈퇴가 발효되면서 국제적인 온실가스 감축 협력에 상당한 불확실성이 발생했다.

이는 미국이 탄소중립 정책을 추진하는 데 있어 유럽과 다른 방향을 선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다만 미국 전체가 탄소규제를 중단한 것은 아니다. 캘리포니아 등 일부 주에서는 자체적인 배출권거래제와 기후정책을 운영하고 있어 연방정부와 주정부의 정책을 구분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반면 중국은 2021년 전국 단위 탄소배출권 거래시장을 출범시킨 이후 적용 산업을 확대하고 있다. 초기에는 발전 부문이 중심이었지만 철강, 시멘트, 알루미늄 제련 산업으로 범위를 넓혔으며, 2026년에도 해당 업종의 배출권 할당과 관리체계를 구체화하고 있다.

일본 역시 GX(Green Transformation, 녹색전환) 정책을 바탕으로 2026회계연도부터 일정 규모 이상의 직접 온실가스 배출기업을 대상으로 배출권거래제를 본격 운영하고 있다.

이처럼 미국의 연방정부 정책과 유럽·아시아 주요국의 대응 방향에는 차이가 존재한다. 그럼에도 세계 주요 제조업 국가들이 탄소배출량을 측정하고 관리하는 체계를 강화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탄소중립의 추진 속도는 국가별로 달라질 수 있지만, 기업이 탄소배출 비용과 규제에 대비해야 한다는 흐름 자체가 단기간에 사라질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한국도 배출권거래제 4차 계획기간에 들어섰다

한국 탄소배출권 거래제의 영향을 받는 대규모 철강 및 산업 생산시설 전경
국내 철강·화학 등 에너지 다소비 산업은
탄소배출권 거래제 확대와 저탄소 생산체계
전환에 대응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우리나라는 2015년부터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K-ETS)를 시행하고 있다. 발전과 철강, 석유화학, 시멘트 등 온실가스 배출량이 많은 산업을 중심으로 제도를 운영해 왔으며, 2026년부터는 제4차 계획기간(2026~2030년)에 들어섰다.

이번 계획기간에서 주목할 부분은 발전 부문의 유상할당 확대다.

유상할당이란 기업이 필요한 배출권의 일부를 정부의 경매 등을 통해 비용을 지불하고 확보하는 방식이다. 반대로 무상할당은 일정 기준에 따라 배출권을 무료로 배분하는 것을 의미한다.

정부 계획에 따르면 발전 부문의 유상할당 비율은 2026년 15%에서 2030년 50%까지 단계적으로 높아진다. 다만 철강·석유화학 등 국제경쟁력을 고려해야 하는 주요 탄소누출업종은 상당 부분 무상할당을 유지하도록 설계되어 있어, 모든 산업의 부담이 동일하게 증가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산업계가 탄소비용의 영향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전력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 변화가 전력가격과 기업의 에너지 조달 여건에 영향을 줄 수 있고, 해외 수출시장에서는 국내 배출권 할당방식과 별개로 해당 국가의 탄소규제에 대응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철강과 비철금속, 시멘트, 석유화학, 정유 등 에너지 사용량이 많은 산업은 탄소배출량을 줄이기 위한 기술개발과 설비투자에 상당한 비용을 부담할 수 있다. 조선업 역시 현재 선박 자체가 EU CBAM의 직접 대상 품목은 아니지만, 철강 등 원자재 조달과 해운 분야의 별도 환경규제를 통해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탄소배출 비용은 중소기업에도 새로운 부담이 될 수 있다

탄소배출권 제도가 확대될 경우 가장 우려되는 부분 가운데 하나는 기업 규모에 따른 대응 능력의 차이다.

대기업은 전담조직을 운영하고 탄소배출량 관리시스템을 구축하거나 저탄소 생산기술에 투자할 수 있는 여력이 상대적으로 크다. 반면 중소기업은 생산설비 개선에 필요한 자금은 물론, 탄소배출량을 산정하고 관련 규정을 분석할 전문인력조차 확보하기 어려운 경우가 적지 않다.

물론 모든 중소기업이 배출권거래제의 직접 적용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대기업에 원자재나 부품을 납품하는 중소기업이라면 거래처의 요구에 따라 제품별 탄소배출량이나 에너지 사용량을 제출해야 할 가능성이 있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측정·검증 비용과 설비 개선 부담은 중소기업의 수익성을 압박할 수 있으며, 납품가격에 비용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면 기업의 채산성은 더욱 악화될 수 있다.

따라서 탄소규제를 강화하는 정책과 함께 중소기업의 대응 능력을 높이기 위한 정부 지원, 공급망 차원의 공동 감축사업, 탄소배출량 산정에 필요한 기술지원이 병행되어야 한다.

탄소중립을 위한 제도가 일부 기업에만 감당하기 어려운 부담으로 작용한다면 산업 전반의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탄소배출권은 환경정책을 넘어 경제의 새로운 기준이 될까

탄소배출권 시장의 미래를 단순히 가격 상승이나 새로운 투자기회로만 바라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배출권 가격은 정부의 배출허용총량, 기업의 실제 배출량, 경기 상황, 에너지 가격, 무상할당 규모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며, 국가별 제도 역시 서로 다른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중요한 것은 탄소배출을 줄이는 능력이 앞으로 기업의 생산비용과 수출 경쟁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과거에는 저렴한 원자재와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 높은 생산성이 기업 경쟁력의 주요 기준이었다면, 앞으로는 여기에 탄소배출량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저탄소 생산체계로 전환할 수 있는지가 새로운 평가 요소로 더해질 가능성이 크다.

탄소배출권 제도가 세계적으로 완전히 통일된 형태로 정착할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미국과 유럽의 정책 차이, 개발도상국의 산업화 필요성, 기업들의 비용 부담 등 해결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유럽을 중심으로 탄소배출 규제가 실제 무역제도로 연결되고 있고, 한국과 중국, 일본 역시 배출권거래제의 적용과 관리체계를 발전시키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탄소배출권은 이제 환경보호를 위한 제도인 동시에 기업의 생산방식과 국제무역의 경쟁 조건을 변화시키는 경제적 장치가 되고 있다.

우리 기업이 주목해야 할 부분도 바로 여기에 있다. 탄소배출권을 얼마나 확보할 것인가보다 앞으로 탄소배출 비용을 얼마나 줄이고, 변화하는 시장에서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가 더욱 중요한 과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주요 참고자료 및 관련 기관

본 글은 국내외 정부 및 국제기구에서 발표한 탄소배출권 관련 정책과 공식 자료를 참고하여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