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면 어김없이 기부와 나눔에 관한 따뜻한 소식들이 들려옵니다. 누군가 주민센터에 성금이 담긴 상자를 놓고 갔다는 이야기, 어려운 이웃을 위해 쌀을 보내왔다는 소식, 오랫동안 모은 돈을 기꺼이 내놓았다는 사람들의 사연입니다.
해마다 비슷한 이야기를 접하면서도 마음이 머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마도 우리 주변에 여전히 이런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반갑기 때문일 것입니다.
살아가는 일이 만만치 않은 요즘입니다. 경제적인 어려움도 그렇지만, 하루하루 자신의 삶을 꾸려가는 것만으로 벅찰 때가 많습니다. 그러다 보면 가까운 이웃의 형편조차 살피지 못하고 지나치기 쉽습니다.
그런 세상에서도 누군가는 다른 사람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은 사람도 있고, 오랫동안 기부와 봉사를 이어온 유명인도 있습니다. 방법과 규모는 달랐지만 그들의 나눔은 누군가의 일상에 실제적인 도움으로 전해졌습니다.
26년 동안 이어진 이름 없는 약속
전북 전주시 노송동에는 해마다 연말이면 특별한 전화가 걸려 옵니다. 주민센터 인근에 성금을 놓아두었으니 어려운 이웃을 위해 사용해 달라는 짧은 연락입니다.
2000년 58만 4천 원이 담긴 돼지저금통에서 시작된 기부는 2025년까지 26년 동안 27차례 이어졌습니다. 누적 기부액은 11억 3천만 원을 넘어섰고, 사람들은 이 기부자를 ‘얼굴 없는 천사’라고 부릅니다.
놀라운 것은 금액만이 아닙니다. 오랜 세월 꾸준히 이어진 나눔이 어느덧 지역의 소중한 기억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성금은 어려운 가정의 생활을 돕고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하는 데 쓰였습니다. 주민들은 기부자의 선행을 기념하는 날을 만들었고, 마을에는 얼굴 없는 천사의 이름을 딴 길도 생겼습니다.
기부자의 얼굴은 여전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가 남긴 흔적은 마을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처음에는 한 사람의 기부였던 일이 이제는 지역 주민들이 함께 기억하고 이어가는 나눔의 이야기가 된 것입니다.
50만 원과 365만 원에 담긴 서로 다른 시간
2024년 경북 경주에서는 폐지를 모아 생활하는 한 주민이 지역의 어려운 어린이들을 위해 50만 원을 기부했습니다. 성금은 교회를 통해 전달됐으며, 기부자는 자신의 신원을 밝히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폐지를 수집하는 일이 얼마나 고된 노동인지 생각하면 그 소식이 쉽게 잊히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그분의 생활이나 형편을 우리가 짐작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자신의 노동으로 마련한 돈을 어린이들을 위해 내놓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마음에 남습니다.
같은 해 충북 단양에서는 한 주민이 군청을 찾아 365만 원과 손편지를 전달했습니다. 하루 만 원씩 1년 동안 모은 돈이었습니다.
그는 편지에서 단양에 정착해 30년 동안 살아온 시간을 돌아보며 지역사회에 대한 고마움을 전했습니다.
두 기부의 사연은 서로 다릅니다. 한 사람은 폐지를 팔아 모은 돈을, 다른 사람은 하루하루 모은 정성을 전했습니다.
우리는 기부 소식을 접할 때 금액부터 살펴보곤 합니다. 하지만 그 돈이 마련되기까지의 시간과 수고를 생각하면 숫자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들의 나눔이 오래 기억되는 이유도 어쩌면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
이름이 알려진 사람들의 나눔도 다르지 않다
기부와 나눔의 가치가 반드시 이름을 밝히지 않는 데서 비롯되는 것은 아닙니다.
가수 션은 오랫동안 연탄 기부와 배달 봉사에 참여해 왔습니다. 겨울이면 직접 연탄을 나르고, 함께할 사람들을 모아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찾아갑니다. 그 활동에는 다른 연예인과 자원봉사자들도 동참했습니다.
가수 아이유도 어린이와 청소년, 어려운 이웃을 위한 기부를 이어왔습니다. 2024년 어린이날에는 성금을 기부했고, 한 아동양육시설의 아이들에게 식사를 후원한 사실도 시설 측을 통해 알려졌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잘 알려진 활동이고, 어떤 선행은 시간이 흐른 뒤에야 알려집니다. 그렇다고 공개된 기부의 가치가 작아지는 것도, 익명의 기부가 언제나 더 훌륭한 것도 아닐 것입니다.
오히려 이름이 알려진 사람들의 참여가 다른 이들의 관심을 불러오고, 새로운 봉사와 기부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가 기억할 것은 누가 더 많이 나누었느냐는 비교보다, 각자의 자리에서 실천한 나눔이 실제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닿았다는 사실입니다.
쌀 300포대가 도착하면 마을 사람들이 움직인다
서울 성북구 월곡2동에는 2011년부터 해마다 쌀 300포대가 전달돼 왔습니다. 2024년에는 14년째를 맞아 누적 기부량이 4,200포대, 무게로는 84톤에 이르렀습니다.
기부자는 이름을 밝히지 않았습니다. 주민센터에 쌀이 도착할 날짜를 알려주고, 약속한 날이면 쌀을 실은 트럭이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에서 눈여겨볼 장면은 쌀을 보내는 기부자의 선행만이 아닙니다.
트럭이 도착하면 주민센터 직원과 자원봉사자들이 쌀을 내렸습니다. 때로는 길을 지나던 주민과 군인들도 무거운 포대를 옮기는 일에 힘을 보탰다고 합니다.
쌀을 보내는 사람은 한 명이었지만, 그것을 필요한 이웃에게 전하는 일에는 여러 사람이 함께했습니다.
우리는 기부자의 이름이나 금액을 기억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누군가의 정성이 실제 도움이 되기까지는 그 뜻을 받아 전달하는 사람들의 손길도 필요합니다.
이 장면이 유독 따뜻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 입니다. 한 사람의 나눔이 다른 사람의 참여를 이끌고, 그렇게 모인 수고가 또 다른 이웃의 식탁으로 이어졌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함께 살아가게 하는 힘은 무엇일까
살다 보면 누구나 어려운 시기를 겪습니다. 갑작스러운 실직이나 질병, 가족의 문제처럼 예상하지 못한 일이 생기기도 하고, 평소에는 잘 견디던 일조차 어느 날에는 혼자 감당하기 버거워질 수 있습니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은 경제적인 도움만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누군가 자신의 어려움을 알아주고, 외면하지 않는다는 사실만으로도 다시 일상을 이어갈 힘을 얻을 때가 있습니다.
물론 개인의 기부와 봉사만으로 우리 사회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한 공적인 제도와 지원은 반드시 뒷받침돼야 합니다. 나눔이 국가와 사회의 책임을 대신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제도가 미처 닿지 못하는 일상의 빈자리에는 사람의 관심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기부를 하는 사람, 봉사에 참여하는 사람, 주변의 어려운 이웃을 살피는 사람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그 빈자리를 채워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행동이 이어질 때, 우리가 사는 동네는 단순히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공간을 넘어 서로의 삶을 조금씩 보살피는 공동체가 됩니다.

기부와 나눔, 그 이름보다 오래 남는 것은 따뜻한 온기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본 이야기들은 어쩌면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선행 가운데 일부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세상에는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을 뿐, 오랫동안 기부와 나눔을 실천하거나 자신의 시간과 정성을 이웃에게 전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참 많을 테니까요.
이런 마음들이 하나둘 모이고 또 다른 사람에게 전해진다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도 지금보다 조금은 더 따뜻해지지 않을까요. 누군가에게는 작은 보탬이 되고, 또 누군가에게는 힘든 하루를 견디는 데 큰 위로가 될 것입니다.
살다 보면 세상이 참 각박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서로를 생각하고 가진 것을 나누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접할 때면,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아직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참 많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어쩌면 우리가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은 아름다운 이야기들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곁에서 조용히 이어지고 있는 평범한 사람들의 나눔 속에 있는 것은 아닐까요?
참고자료
- 연합뉴스|전주 얼굴 없는 천사의 오랜 기부와 아너 소사이어티 등록 — 2026.10.20.
- 뉴스1|전주 얼굴 없는 천사의 2025년 기부 현황 — 2025.12.30.
- 연합뉴스|폐지를 팔아 모은 돈 50만 원을 익명으로 기부한 경주 주민 — 2024.10.25.
- 연합뉴스|하루 만 원씩 모아 365만 원을 기부한 단양 주민 — 2024.02.06.
- 연합뉴스|성북구 월곡2동의 14년째 익명 쌀 기부 — 2024.01.05.
- MBC|가수 션 가족의 연탄 봉사와 나눔 활동 — 2026.01.10.
- 머니투데이|가수 아이유의 어린이날 기부와 아동양육시설 식사 후원 — 2024.05.07.
자료 기준: 2026년 10월 29일. 공개된 보도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했으며, 기부자의 개인적인 사정이나 동기를 추측하지 않았습니다.

